돌연변이가 된 남자
영화 돌연변이(Collective Invention, 2015)는 평범한 청년이 어느 날 실험의 부작용으로 인해 물고기 인간으로 변하면서 겪게 되는 사회적 반응과 인간의 이기심을 풍자한 블랙코미디입니다.
박구(이광수)는 취업도 쉽지 않고, 별다른 목표도 없이 살아가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신약 실험 참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인해 그의 얼굴이 완전히 물고기 형태로 변하는 돌연변이가 됩니다.
그는 단순한 연구 실험의 희생자였지만, 이 기괴한 모습이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으면서 일약 유명인사가 됩니다. 사람들은 그를 희화화하기도 하고, 동정하기도 하며, 심지어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한편, 박구의 이야기를 취재하려는 기자 상원(이천희)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 사건을 따라가다가, 점점 더 진실과 조작,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얽힌 복잡한 문제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또한, 박구를 처음부터 걱정하고 응원했던 주진(박보영)은 그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점점 커지는 사회적 관심과 상업적 이용 속에서 진정한 박구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미디어의 속성
돌연변이는 단순히 기괴한 설정 속의 코미디 영화가 아니라, 미디어의 선정성,대중의 맹목적인 관심과 조롱,기업의 비윤리적인 실험과 책임 회피,인간이 가진 본능적 이기심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작품입니다.
박구가 처음 물고기 인간으로 변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희화화하고 조롱하며 SNS에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갑자기 그를 동정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로 바뀝니다.
그의 인기는 점점 커지고, 심지어 방송 출연 제안과 광고 계약까지 들어옵니다. 기업들은 그를 이용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려 하고, 대중은 흥미 위주의 소비를 계속합니다. 그러나 박구가 상업적인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순간, 사람들은 급격히 관심을 잃고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한편, 기자 상원은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박구가 실험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진실을 보도하는 것보다는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뉴스를 선택해야 하는 언론의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러한 전개는 현대 사회에서 유명세와 대중의 관심이 얼마나 쉽게 변하고, 얼마나 쉽게 사람을 소비하고 버리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박구의 존재가 던지는 질문
영화 돌연변이는 가볍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그 속에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미디어는 사람을 어떻게 소비하는가?, 기업은 실험과 연구의 윤리를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대중은 얼마나 쉽게 관심을 갖고,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는가?
박구의 기괴한 모습은 단순한 코믹 요소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사람이 어떻게 상품화되고, 이용되다가 결국엔 버려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입니다.
박구의 이야기는 단순한 돌연변이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돌연변이적인 구조를 비판하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영화 돌연변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명대사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라는 박구의 말입니다.
이 대사는 단순히 박구의 바람이 아니라, 영화가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박구는 처음부터 유명해지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주목받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기업의 무책임한 실험, 언론과 미디어의 소비 구조, 대중의 변덕과 무관심속에서 그는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처음에는 조롱하고,다음에는 동정하고, 그다음에는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사회의 태도는 결국 박구가 “돌연변이”가 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이 대사는 단순히 박구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어떠한 구조적 문제 속에서 희생양이 되며, 쉽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이용당하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박구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없는 세상. 이 영화는 그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를 관객에게 묻고 있습니다.